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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

면암 최익현 선생을 모신 모덕사 답사 청양 가볼만한 곳 청양 여행 추천

by Schos 2024. 3. 26.

청양은 칠갑산, 구기자와 청양고추로 유명하지만 여행지로는 유명한 곳이 많지 않습니다.

여러 시, 군에서 여행 컨텐츠들을 만들어 여행의 다양한 즐거움을 많이 제공하듯이 청양도 다양한 체험거리와 여행 스팟들을 제공하고 있답니다.

 

청양 가볼만한 곳, 다양한 볼거리 추천, 청양 여행 추천

- 고운 식물원, 장곡사, 장승공원, 천장호 출렁다리, 모덕사, 백제문화체험 박물관, 칠갑산 산행

 

 

순국 선열 면암 최익현 선생을 모신 모덕사

조선 후기 애국지산인 면암 최익현 선생의 영정을 모신 사당으로 머덕사 현판의 글자는 고종 황제가 내린 글 가운데 "면암(최익현)의 덕을 흠모한다."라는 구절에서 모자와 덕자를 취한 것이라고 합니다.

 

 

청에 진입하여 모덕사를 가는 길의 자연 경치도 아름다워서 드라이브 코스로도 좋을것 같습니다.

모덕사의 주차장은 크지 않은데 , 평일 방문이라 관광객이 없는 것인지 주차 고민은 없었습니다.

● 모덕사 위치 : 충청남도 청양군 목면 나분동길 12
●  주차비 :무료
●  관리사무소 : 운영

 

 

 

모덕사에 방문한 주요 인사중 김구 선생도 계셨습니다.

주요인사들의 방문록을 살펴보니 제가 몰랐지만 유명했던 독립운동가이셨습니다.

일제 강점기 시기에 얼마나 이름 모를 독립 운동가들이 나라를 위해 희생하셨는지 감히 상상을 할수 없을 만큼 숙연해집니다.

 

 

 

나라를 위해 희생하셨던 독립 운동가들의 혼을 기리는 삼일절, 하루만이라도 감사한 마음을 가져야 겠습니다.

 

 

면암 최익현 선생(1833~ 1906) 동상

1905년 을사조약이 체결되자 을사 5적을 처단할 것을 주장하였고 같은 해 일본의 좌상을 16개 항목에 적어 항쟁하며 전라북도 태안에서 의병을 모집, 일본군과 싸웠다. 그러나 일본 헌병대에 체포되어 대마도에 유배되었을때 왜국 땅을 밟지 않겠다고 버선 속에 흙 한줌을 넣고 물 한동이를 가지고 배에 오르시고, 구금중에는  적군이 주는 음식을 먹을수 없다며 단식하다가 74세의 나이로 끝내 순국하셨습니다.

 

이후에 그를 추모하는 사림들이 태인, 포천, 곡성등 여러지역에 그의 사당을 세웠으며 이것 모덕사는 선생이 살았던 고택과 장서각, 선생의 유물을 전시하는 전시관이 있습니다.

 

 

묘소가 처음에는 논산시 노성에 있었으나, 예산군 광시로 옮겨졌습니다.

사우 모덕사 건립 당시 일제의 탄압으로 문중의 사당으로 가장하여 건립하였습니다. 그후 1997년에 유물 전시관, 1985년 장서각인 춘추각, 1989년에는 영당(성충사)을 지었다고 합니다. 

 

 

면암 최익현 선생의 동상 옆에는 대한민국 임시정부 주석 백범 김구선생의 환국고유제문 기념비가 세워져 있습니다.

 

 

 

모덕사 안에 최익현 선생의 유물 전시관을 관람하러 들어가봅니다.

 

 

정산 현감 채용신이 그린 면암 최익선 선생의 영정이 유물 전시관 한쪽에 전시되어 있으며, 생전에 사용하시던 유품들이 전시되어 있고 보존 상태가 양호합니다.

 

 

 

대한 민국 4대 대통령 윤보선에게 받은 대한민국 건국 공로훈장 및 조복도 전시되어 있었습니다.

애국지사들의 유적지들이 잘 관리되지 않으면 안타까운데 청양 모덕사 내 유물 전시관이 깨끗하고 전시품들이 잘 보존되어 있어서 청양군에서 관리를 잘한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면암 최익현이 생전에 기거하셨던 고택 주변으로 춘추각, 영모재, 사당이 있어서 조용히 거닐면서 독립의 역사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해 보기도 합니다.

아이들과 함께 견학을 와도 좋을것 같습니다.

 

 

성충대의의사비 (포로팔도 사민 1905년 음력 11월 21일)

 

내용 : 팔도의 동포 사민들에게 고함.

아! 슬프다1 오늘의 국사를 차마 어찍 말하랴. 옛날 망국에는 종사만이 무너지더니, 오늘의 망국에는 인종마저 한께 무너지는 구나, 우리 삼천만 인민이 이제 모두 노예가 되니 남의 노예가 되어 살기란 곧 죽음만 같지 못하다 

하물며 당당한 이 대한자주지민이 구차하게 고개 숙여 저 원수밑에서 하루의 삶을 구한다면 어찌 죽음보다 나으랴, 우리나라는 토지도 인민도 정치도 모두 우리의 자립이요, 자주였다....(중략)

 

성충대의의사비 뒤로 1905년(고종 42년)에 정산 현감 채용신이 그린 면암 최익현 선생의 영정을 봉안하고 있는 영당을 마지막으로 둘러보고 모덕사에서 나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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